진화와 확장의 충동
하카손의 작업을 선명한 언어로 기술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애초에 명료한 해석은 그의 작업 의도와 상충하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페인팅, 독일에서 영화와 미디어아트, 벨기에서 패션을 공부한 작가는 노자의 무위와 베르그송의 반복/지속 이론에 끌려 인체의 진화와 확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작가노트) 다양한 매체를 횡단하는 작가의 작업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경계적, 탈매체적 성향을 짙게 드러낸다. 작업을 예로 들면, <물의 고리>(2022)에서 작가는 PVC 파이프, 자동차 범퍼, 스트레치 필름, 고무보트, 벨트 등의 오브제를 해체, 재조합하며 기존 맥락으로부터 이탈한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한옥 빗살창과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만든 <탈착과 분열의 전조 1>(2021) 역시 서로 다른 세계들이 결합, 출동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형상의 물질과 상태를 보여준다. 납작 웅크리고, 어딘가에 기생하는, 또 힘들게 스스로를 열어젖히고 있는 듯한 위 작품들은 모두 입체적이며 동시에 선적이다. 2차원과 3차원, 여러 물질과 형상, 어긋난 시간 사이를 오가는 작업은 앞서 언급한 재료(들)의 사용뿐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 내는 시각적, 매체적 표현의 다중성과 함께 완벽하게 독해 불가능한 해체와 재조합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나아가 <탈착과 분열의 전조 1>(2021), <Dancing In The Night of Kiss>(2020, 2021) 등의 작업은 전시장에서 완성된 작품으로, 단일 서사로 전시되기보다 관객과 퍼포머의 신체에 실제 착용/적용되며 회화와 조각, 패션(쇼)과 퍼포먼스 같은 매체적 범주에서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사건과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와 레디메이드 활용 방식은 미술사에 등장하는 몇몇 작업과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Armoured Evolver>(2020, 2021), <Twins>(2021) 등의 작업은 1960년 후반 미술, 특히 조각에서 발견되는 기존 미술 재료와 위계적 질서로부터의 이탈을 모색했던 일련의 실험들을 연상시킨다. 대표적으로 1968년 아트포럼 기고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우연적이고 부수적인, 또 불확정적이고 과정 중심적인 ‘반형태(anti-form)’의 개념으로 설명한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작업과의 희미한 접점을 굳이 언급할 수 있다. 사각형의 대형 카펫을 오려 바닥에 쌓거나 벽에 거는 등의 작업을 보여준 로버트 모리스의 ‘반형태’는 에바 헤세(Eva Hesse)와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과 같은 당대 작가들의 실험과 그 맥을 공유하는, 다시 말해, 1960년대 후반, 미니멀리즘 이후 미술/조각의 경향을 설명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플라스틱, 헝겊, 고무, 벨트 등의 재료로 조각의 일시성과 무정형성을 보여주는 하카손의 작업은 분명 앞서 언급한 미술들의 특징을 일부 공유한다. 같은 맥락에서 작업은 경직되고 비인간적 구조에서 벗어난 다양한 변형과 적용의 가능성을 통해 제한된 미술과 디자인의 영역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하카손의 작업이 드러내는 비정형성의 다른 의도는 무엇일까. 작가의 작업에서 형태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불명확함의 의도를 파악해 보려는 이 모순된 질문에 작업의 방법론은 어렴풋하게나마 해석의 지점을 마련해준다. 그의 작업에선 감기와 매듭짓기, 연결하기와 같은 반복되는 방법론이 발견된다. 이 방법론은 앞서 언급한 작업에도 적용되는, 그러니까 이미 많은 미술의 사례를 통해 기술된 유동성과 초월성, 제한적이지 않은 감각의 현시뿐 아니라,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입는 조각’의 개념과도 연결해 볼 수 있다. 감고 매듭짓는, 또 입는 행위는 서로를 지지하고 보완한다. 이들은 모두 저 멀리 존재했던, 어떤 접점 없이 배제되어 있던 대상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극히 현재적인 대상으로 뒤바꾸는 장면을 모색한다. 매듭짓고, 입는 행위에서 거리감 속 타자는 잠시나마 지금 이곳, 나의 신체로 소환되며 기존의 분리로부터 해방된다. 그렇게 무지와 무조건적 혐오에서 벗어나 보다 긍정적인 차이로 다름을 사고하고, 또 경험하게 한다. 서로 같지 않음을 실제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인지하며 이유 없이 배제되었던 실체의 부활을 현실의 재정의를 시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업의 반복되는 방법론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 그리고 그것의 차이를 자기 동일성의 원리로 환원하는 대신, 다름을 보다 분명한 존재로 확인시킨다.
위 설명한 방법론에서 다름의 인지 과정에 개인의 육체/신체가 일종의 주요 매체가 된다는 점은 작가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무정형성을 거듭 인지시킨다. 작업에서 신체는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가 상호 인지되는 지점을 제시한다. 입는 조각을 예로 들면, <탈착과 분열의 전조 1>(2021), <Dancing In The Night of Kiss>(2020, 2021) 속 신체는 작업을 입는 관객 혹은 퍼포머의 신체와 그것을 닮은, 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작업의 신체를 동시에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작업에서 드러나는 신체는 스스로의 경계를 갱신, 개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제시된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작업과 함께 얘기되어 온 장애와 비장애,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의 통상적 경계가 재고되는 지점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렇게 작업의 신체는 익숙한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형상으로, 또 주어진 세계를 개조, 갱신하는 낯선 존재로 출현한다.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Bataille)가 현실과 초자연,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본원적 충동을 일종의 에로티시즘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작업 속 신체는 성적 비유를 통해 환상성과 자기갱신의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여기서 형태를 초월하게 될 신체의 비정형성과 환상성의 구축은 타자화된 인종, 계급, 젠더의 몸/성도, 기존 질서를 추종하는 권력의 몸/성도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탈인간화된, 사이버그적인 몸을, 변이와 혼성을 의도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신체 이후의 신체, 탈인간적 신체를 리서치하며 현실 너머 다양한 억압을 해제하는 신체를 구상한다. 오토마타 기술자와 협업해 의족과 보호대 같은 장치를 발전시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작업 초창기부터 관심 가져온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포개지는 의식과 세레모니에 대한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물성에 대한 사고를 확장하며 좀 더 다양한 물체의 활용과 그것의 효과, 동작을 모색한다. 하카손의 작업은 그렇게 서로 다른 세계를 겹치고 또 펼쳐낸다. 진화와 변화의 탐닉을 통해 규정되지 않은 인간상과 포스트휴먼, 나아가 탈인간적 공진화를 탐색한다.